작성일 : 13-06-14 11:34
  한반도에서만 자라는 '금나무'
      브레인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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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문헌의 단 한 줄에 의지, 꼬박 5년간 황칠나무를 찾아 헤맸던
정순태씨. 극적으로 황칠군락을 발견한 이후 8년 동안 땀흘려 해남
에서 황칠숲을 조성했다.
ⓒ 전라도닷컴
나무는 땅과 하늘을 잇는 통로였다. 땅의 기운(地氣)을 하늘의 기운(天氣)에 닿게 하는 매개, 천지간의 뭇생명들을 숨쉬게 하는 ‘풀무’로 인식했다.

‘숲은 지구의 허파’라는 수사(修辭)는 바로 그 나무철학의 현대적 버전으로 공교롭게도 동서고금이 한통속으로 꿰뚫린 반가운 일치의 하나다.
결국 참뜻은 통시공적으로 하나인 것이다.
 
천공과 대지를 아우르는 간짓대, 나무
선인들이 유독 나무에 치성을 하고 당산으로 삼은 데는 이만한 철학적 기틀이 있었던 것이다. 나무는 인간과 동격이었다. 아니, 그 이상인 존재였다. 땅에 바짝 엎드린 미물인 인간은 나무를 통해 하늘로부터 소명을 내려 받고 또 그에 대한 복명을 올려바칠 수밖에 없었다.

나무는 가만히 서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를 빨아들여 섞고 버무리고 골라서 대허공에 흩뿌린다. 그리고는 그 태허의 기포(氣泡)들을 모아서 버무려서 골라서 대지에 펼쳐깐다. 이로 하여 나무는 천공과 대지를 아우르는 간짓대인 것이다.

나무가 인간보다 동물보다 위대한 것은 서양인들이 연구한 물질과학 이론에서도 거듭 거듭 증명된 바 있다. 뭐드라, 무슨 DNA 함량이 나무가 인간보다 훨씬 많다든가, 땅 위에서 가만히 서서 광합성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생물은 나무뿐이라든가(인간은 여지껏 태양에너지 이용을 못해서 에너지 문제 등 온갖 고초를 겪고 있다네) 하는 발견이 그것이다. 자, 나무가 어떤 물건인고 하는 건 그쯤 해 두고.
‘망각의 나무’  백년 만에 역사 속으로 걸어나오다
황칠나무라는 게 있다. 아시는 분은 아시고 잘 모르시는 분들도 이름은 더러 들어 보셨을 것이다. 근자 매스컴에서 좀 떠들어댔으니까. 그런데 실인즉, 최근까지 황칠나무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었다.

황칠나무 존재 자체가 어둠에 묻혀 있었다. 황칠나무는 분명히 우리 땅에 살아 있었으되 아무도 그 존재를 눈여기지 않았다. 황칠나무는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진, 겨레의 삶 속에서 잊혀진, 한반도 식물도감에서 지워진 ‘망각의 나무’가 되어 있었다.

어느 때 이인이 나타나 그걸 흔들어 일깨웠다. 황칠나무가 잠든 지 백년 만에 살아났다. 한반도의 ‘금나무’가 찬란한 자태로 산 역사 속으로 걸어나온 것이다.
평소에 우리 전통문화에 정을 들여온 정순태씨는 1980년대 말 어느날 다산(茶山)을 읽다가 벌떡 일어났다. 눈을 비비고 한 시 구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 대목이었다.
‘완주산 황칠은 유리처럼 빛나 신기한 나무라고 천하에 소문났네’ (莞州黃漆瀅琉璃 天下皆聞此樹奇)

정씨는 그 길로 행장을 꾸려 남도 땅으로 내려갔다. 완주로 표기된 완도 해남 일대를 쏘다녔다. 단 한 줄의 문헌에 의지, 그 근방 어딘가에 반드시 황칠나무가 자생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밤낮 없이 신들린 사람처럼 깊은 산 속을 헤매 다녔다.
그러기를 꼬박 5년, 두륜산 험준한 골짜기에서 황칠나무 군락을 찾아냈다. 선인들의 기록은 역시 허틈이 없었던 것이다.
5년간 헤맨 끝에 두륜산에서 황칠나무 군락 발견
서울의 가산을 정리, 해남으로 내려가 마산면 상등리 ‘아침재’ 골짜기에 밭을 갈았다. 두륜산 자생지에서 씨를 받아 밭에 뿌리고 싹을 틔웠다.
8년동안 땀 흘린 결과, 3만여 그루의 황칠나무가 우거진 황칠숲이 조성되었다. 이렇게 해서 백년 전에 멸실된 것으로 치부됐던 황칠나무가 우리 곁에 울울창창히 부활했다.

도대체 얼마나 진귀한 수종이길래 모든 것을 바쳐 정씨는 황칠나무에 매달린 것일까. 황칠에 관한한 다른 누구의 언급도 가로막고 나서는 정씨의 입을 통해 황칠의 정체를 들어보자.
“흔히들 황칠나무를 도료나 내는 칠나무로 여기는데 그건 나무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소치입니다. 황칠나무는 ‘황정목’이라 부르는 게 바른 호칭입니다. 황정(黃精)이란 태양(혹은 하늘)의 기운을 뜻하는 말로 황정목은 우주의 정기를 통섭하는 생명체라는 위상을 갖지요. 저는 <황제내경(黃帝內經)>에 나오는 황정초를 황칠나무의 원조로 내정합니다.”

황칠나무의 수액은 생명의 기운을 가득 담은 양(陽)의 결정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신이한 효험이 나타난다는 당위론을 정씨는 편다.
▲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에서만 자라는 황칠나무는 도료·향·약제 등 쓰임새가 폭넓다.
ⓒ 전라도닷컴
향은 정신을 맑게 하고 색은 천하제일 도료
“<주역周易>의 기록에 이르러 황정의 신험이 결정적으로 증거되고 있습니다. 서문에 해당하는 ‘서의’(筮儀)에 보면 ‘주역을 읽을 때는 반드시 황칠판 위에 책을 올려놓고 보라’는 대목이 나오지요. 황정목의 수액에서 나오는 향이 정신을 맑게 하는 안식향(安息香)이라서 심오한 이론의 이해를 돕는다는 말입니다. 황칠나무를 논할 때 바로 이 오묘한 청향(淸香)의 생산에 먼저 주목해야 올바른 순서라는 게 내가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예요.”

그러니까 황칠은 색(色) 이전에 향(香)이라는 얘기다. 이 향은 요즘 유행하는 아로마테라피의 좋은 질료로 각광받고 있다.
황칠이 그 독특한 향과 함께 갖추고 있는 약성(藥性)은 성인병이나 암의 예방 치료에도 활용도가 높다는 것이 속속 입증되고 있다. 황칠의 향성과 약성은 현안으로 떠오른 ‘새집병증후군(SHS)’의 해결책으로도 제시되고 있다.

“황칠은 예로부터 갖가지 약재로 두루 쓰였습니다. 체내의 독성을 없애고 정기를 맑게 하는 강력한 성분 때문이지요. 황칠나무의 학명이 ‘나무인삼’의 뜻인 덴드로파낙스(Dendro-panax morbifera)인 것에서도 그 약성이 충분히 드러나지요.”

향(香)과 약(藥), 그 다음에야 색(色)이 자리를 요구할 수 있다. 징기스칸, 중국황제의 물건에나 쓰였던 천하제일 도료인 황칠의 그 눈부심에 대해서는 새삼 여러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이것 한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황칠은 저를 드러내는 시현도료가 아니라 오브제를 드러내주는 보호도료라는 점입니다. 옻칠은 본재의 결이며 색이며를 까맣게 지워버리고 저 혼자 번쩍이지만 황칠은 본재의 무늬결이며 색택이며 모양까지를 그대로 투명하게 살리면서 우아한 수식을 해준다는 점이 다릅니다. 다분히 모성적이지요.”

황칠의 쓰임새는 이밖에도 전자파 차단제 등 많지만 이 세 가지 덕목만 제대로 활용하면 그야말로 ‘21세기 생명나무’로서의 진가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씨는 이른다. 황칠을 내는 황칠나무는 두릅나무과 오가피속의 상록 활엽교목으로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에서만 자라는 한국특산수종이다.
한송주 <문예비평가>